이미지를 포함한 자세한 기사는 아래 주소를 클릭하세요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6185062&memberNo=36054406&vType=VERTICAL 백화점 식품 매장에 진열된 채소의 생김새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예쁘다. 백설공주가 이런 사과를 먹었을까 싶게 완벽한 구형의 빨간 사과가 쏟아질 듯 담겨 있고 당근, 감자, 고구마 같은 뿌리채소는 상처 난 곳 없이 서글서글한 인상이 좋다. 물론 이렇게 그림 같은 외양의 과일과 채소는 값이 꽤 나간다. 제품을 고르는 소비자, 경매장, 대형 유통업체 대부분이 겉모양을 기준으로 맛을 가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보이는 것이 전부일까? 백화점에서 과일 담당 바이어로 일하다 ‘프레시 어글리’라는 못난이 농산물 쇼핑 플랫폼을 연 박성호 대표는 과학적 원리가 담긴 선별 노하우와 유통업체가 판매와 관리를 수월하게 하려고 만든 기준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맛있는 농산물을 고르는 방법은 분명히 있어요. 줄이 선명하고 배꼽이 작은 수박은 심이 크지 않고 고루 잘 익어 있는 것처럼요. 하지만 개당 250~350g 크기를 로열 사이즈로 정해 가장 비싸게 경매하는 사과의 경우 200g 내외의 작은 사과도 맛에서 전혀 뒤떨어지지 않아요. 참외도 큰 게 중량당 가격이 훨씬 비싸지만 먹어보면 오히려 작은 참외가 맛있고요.그가 운영하는 쇼핑몰에 들어가 다리가 세 개나 되는 당근, 토인 모양의 감자, 납작하게 눌린 사과를 보니 재미있기도 하고 호기심이 이는데, 한편으로는 방사능에 노출돼 변형된 일본 채소가 떠오른다. 박성호 대표에게 농산물이 못생긴 이유를 묻자 자연의 생산물이니 같은 밭과 나무에서 자라도 삐뚤빼뚤 모양이 다양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오히려 농산물이 왜 균일해지고 잘생겨(?)지는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마트에서 오이를 보면 하나같이 곧게 뻗고 길이가 비슷해요. 원래 오이는 크기가 어느 정도 자라면 휠 수밖에 없는데 말이에요. 그럼 곧게 뻗은 오이는 어떻게 자란 걸까요? 플라스틱 케이스를 씌워 그 모양에 딱 맞게 키운다고 해요. 농산물이 스트레스를 받아 안 좋을 수 있다는 말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니 논외로 하더라도 자연 상태에서 키운 오이와 인큐베이터 오이의 신선함이나 영양은 비교가 쉽지 않나요? 물론 농산물이 자라는 과정에서 병충해로 생리장애가 오는 경우도 있어요. 그로 인해 모양이 변형되기도 하는데, 그런 농산물은 모양뿐만 아니라 껍질에 표시가 난다거나 물러지는 등 신선도 자체에 문제가 생겨요. 그렇기 때문에 못난이 농산물이 아니고 그냥 신선하지 않은 병든 농산물이에요.”그는 성장을 촉진해 조기 출하한 농산물 대신 제철에 영양분을 충분히 흡수한 신선함과 사과라면 사과답게 달콤하고 아삭거리고 품종에 따라 새콤하기도 한 보편적 맛을 유통기준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사실 못난이 농산물은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기 시작했다. 2014년 프랑스의 대형 유통업체 중 하나인 인터마르셰가 펼친 ‘불명예스러운 농산물’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즉, 마트에 못난이 과일과 채소 코너를 마련해 30% 저렴하게 판매하고 그걸로 만든 주스와 수프를 무료로 나눠준 뒤로 유럽 전역에 못난이 농산물을 소비하는 운동이 퍼졌다. 영국에서는 제이미 올리버 셰프가 영국의 소매업체 아스다와 함께 ‘못난이 채소 박스’를 판매하며 캠페인을 이어갔다. 연간 272만 톤의 농산물이 단지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버려진다는 미국에서도 ‘임퍼펙트 프로듀스(Imperfect Produce)’ 같은 못난이 농산물 정기 배송 서비스가 인기다. 한편 장식보다 본질, 기능에 집중하는 브랜드 철학을 지닌 일본의 무인양품은 일찌감치 못난이 식재료에 주목해왔다.‘연어는 몸 전체가 연어다’라는 광고 카피로 연어의 가장자리와 머리, 꼬리 부분에도 맛있는 살이 많이 붙어 있으니 버리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했고, 완전한 원형 표고버섯이 아니면 판매할 수 없었던 80년대 일본 시장에서 건조해 사용하면 무방한 깨진 건조 표고 버섯을 판매한 것이다. 딸기에 초콜릿을 씌운 간식 제품에 사용되는 딸기의 모양이나 크기를 선별하지 않고, 테두리가 울퉁불퉁한 센베이는 제조 과정에서 부서진 것까지 담아 판매한다. 최근에는 못난이 농산물로 만든 기발한 가공품도 눈에 띈다. 일본에서 판매 중인 ‘베지트’는 당근, 무, 토마토, 바질 등의 신선한 채소를 김 같은 시트 형태로 만든 것인데, 원하는 모양으로 잘라 사용할 수 있어 미슐랭 스타를 받은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사용한다. 못난이 농산물을 먹는 것은 버려질 위기에 처했던 전 세계 농산물 3분의 1 정도의 판로를 열어주는 윤리 소비인 동시에 제품을 선별하고 재포장하는 유통 과정이 생략돼 20~60% 저렴한 값에 신선한 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는합리적 소비다. 《세계 야채 여행기》를 쓴 다마무라 도요오는 “야채를 먹는다는 건 그 야채가 지닌 이야기를 먹는 것과 같다”고 적었다. 흙에서 자라 열매 맺는 땅의 산물로서 못난이 채소가 마냥 못생겨 보이지만은 않을 때, 상품의 이면을 보는 동시대적 소비자라 할 수 있지 않을까?Editor 김주혜 Photographer 정석헌